본문 바로가기

새벽에 물을 챙기느라 잠을 설친다. 이걸 며칠 반복했더니 신경성 위염이 왔다. 다음 날 병원을 가려다 아이 혼자 둘 수 없어 형수를 집으로 불러 약을 받고 링거를 맞았다. 나중에 알게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애타지 말라고 당신에겐 바로 알리지 않았다. 이 새끼 재검에서 수치 회복하면 긴장 풀려 앓아누울 것 같다. 질병 관련 카페는 초상집 분위기다. 우리 개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안 먹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아이들, 끈 놓지 못하는 보호자들, 떠나보낸 뒤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 붙들어도 포기해도 어쩔 수 없이 오래 남을 죄책감. 더 소중히 다루지 못한 날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사무칠 것이다.

오래전 홍역으로 한 녀석을 잃고, 십 년쯤 지난 후에 아름이가 내게 왔다. 이제 햇수로 열셋, 꽉 채운 열두 살이 된다. 아름이를 들인 후에도 꽤 긴 시간 서먹했고 마음 주지 못해 애먹었다. 먼저 아이를 잃고 난 뒤 아깝고 안타까워 미칠 것 같은 날이 길었다. 자다가도 벌떡 깨 가슴을 치고 머리를 때렸다. 너무 영리하고 각별한 구석이 많은 녀석이라 더 힘들었다. 사람을 감고 녹이는 재주가 대단했던 그 애를 애인처럼 사랑했다. 운명 같았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은 체온이나 냄새 촉감 같은 감각의 기억이다. 선명하고 그립다. 잊으려 애쓰지 않았고 떠오르는 날은 무방비로 나를 내어주고 닥치는 대로 아파했다. 이제 녀석은 녀석대로 기억하고 살아간다. 어떤 아이로도 대체될 수 없음을 안다. 그건 아름이도 마찬가지고. 다만, 나는 오래 아파봤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겁이 나서 다신 못 키우겠다 싶은 두려움은 없다.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언제나 컸다. 개는 항상 옳다.

다시 추워져 냄새 정도 맡게 하는 산책도 못 하고 있다. 심심하니까 주차장에 모인 길냥이들 구경하러 매일 내려간다. 일과가 됐다. 트렁크에서 캔 두어 개 꺼내 모일만한 포인트에 놓고 기다린다. 차가 들고 나는 소리에 자리를 바꾸면서 우리 근처까지 와 가만히 앉는 녀석, 아직 어려 겁이 많은 녀석, 영 관심 없는 녀석. 다양하다. 느리게 바닥을 쓰는 꼬리가 우아하고 예뻐 눈이 즐겁다.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다 돌보는 엄마가 있는 아이들이다. 사람 손도 잘 타고 경계하는 법이 없다. 아름이를 품에 안고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쭈그려 앉아 그것들을 한참 바라본다. 짖거나 흥분하지 않고 얌전히 냥이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본다. 고개가 나를 향하면 잊지 않고 키스한다.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 빈 캔을 챙겨 돌아온다. 해줄 게 별로 없어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무탈하게 이 겨울 마무리하고 새봄에는 산책로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는 때마다 사료를 주문하고 길냥이 밥을 챙긴다. 그 일을 수년째 지속하고 있다. 위대한 여자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건 자기 고양이와는 여태 데면데면 지낸다는 거. 너 고양이 무섭지? 응.

지루한 겨울 끝이다. 곧 봄이 오고 벚꽃도 만개할 테지. 아름아,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괜찮게 만들어 줄게. 아무 걱정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