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세한 것까지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사실 꽤 냉혹한 인간이다. 라고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를 고민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 모든 것이 다 나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인 내가 어째서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온화한 내가 되었다가 또 냉혹한 내가 되었다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 자신을 전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만 특정한 누군가와 있을 때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A라는 이성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허둥대게 되고 결국 우울해지는데 B라는 이성과 있을 때 나는 즐겁게 대화를 이끌 수 있고 뭔가 괜찮은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때 우리가 결국 A라는 사람이 아니라 B라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A보다 B가 좋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B와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서라고, 그런 나로 살아가는 것이 좋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그 상대방 덕분에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까요. 불행하게도 모든 인간관계는 끝이 있습니다. 이별이나 죽음 때문에 누군가를 잃게 되죠. 누군가를 잃어서 슬프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이제는 그 사람의 따듯한 몸을 안을 수 없다는 그런 안타까움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람 앞에서만 가능했던 그 나의 모습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외로움이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도 솔직할 수 있던 것은 그 사람 앞에서뿐이었고, 그렇게 바보 같고 시시한 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 앞에서뿐이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면서 이제 나는 내가 좋아했던 그때의 내 모습도 역시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중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왠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헤아려 본다면 그래서 그런 내 모습이 두세 개만 있으면 어쨌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게는 친구가 세 명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의 모습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울을 보며 난 내가 좋아.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덕분에 타인을 통해서 나의 어떤 모습을 긍정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타인을 둘도 없는 존재로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라노 게이치로
히라노 게이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