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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꽤 한참 만이군요." 일부러 찾아오기에는 영빈이 사는 곳과 이곳은 꽤나 떨어져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지만 제주도에서는 그것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것만큼이나 심리적 거리가 먼 것이다. 서울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길을 부탁하거나 혼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들르는 게 고작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영빈이 물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종일 누워 지내니 다를 게 없죠. 다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요원할 뿐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상태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는 듯했다. "힘이 돌아오면 구름을 좀 더 찍어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작업의 끝이 자꾸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다 말해줍니다. 삶이란 걸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나서 영빈이 말했다. "한 십여 년 전에 충청도 공주에 있는 갑사라는 절로 올라가다 산길에서 웬 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물었죠. 스님,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김영갑 씨가 고개를 외틀고 물었다. "뭐랍디까? 그 중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더군요.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둥둥 떠가고 있고요. 그러고 나서 중은 아무 말도 없이 내처 산길을 내려가더군요. 운수납자(雲水衲子)란 얘기겠죠." 그는 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김 선생님은 구름 찍다 그 잘난 땡중처럼 되지 마십시오. 사람은 서로 말을 하고 살아야지요." "보아하니 오늘도 고기 잡고 오는 모양인데, 많이 잡았나요?" "한 마리뿐입니다. 못 잡을 때가 더 많지요. 그나저나 저는 이렇게 숱한 살생을 해서 나중에 그 업을 다 어찌 갚을지 걱정입니다." 그가 영빈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또렷하고 맑아 영빈은 슬그머니 눈길을 피했다. "나처럼 살생을 많이 한 사람이 또 있을라구요. 사진 한 장 찍자고 정말이지 무수한 들꽃과 풀벌레들을 짓밟아 죽였으니까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죠. 살생을 해야 득도합니다. 그렇게 무구한 목숨들을 밟아 죽이고 나니 비로소 생명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되더이다. 그 업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물고기 몇 마리 죽이는 게 뭐 그리 대숩니까.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진짜 살생이지요."

"이참에 어디 물고기를 잡는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팔아서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닐 테고." "굶주림 때문이겠지요. 아귀 같은 굶주림 말입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나서 그가 말했다. "그 나이에 벌써 그런 허기를 느낍니까?" 무슨 말인지 몰라 영빈은 잠자코 있었다. "아마 살고 싶음 때문이겠죠. 자신을 죽여서라도 다시 살고 싶은 겁니다. 아닌가요?" "글쎄요." "그것도 무당의 푸닥거리 같은 거란 얘깁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까처럼 또 그가 영빈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자신과 남을 많이 해치며 살았군요. 물고기한테 목숨을 동냥하며 살 정도로 말입니다." "실은 제 마음속에 굶주린 짐승이 한 마리 삽니다. 그놈 때문에 이러고 다닙니다." "그럼 그놈부터 잡아야겠군요." 영빈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중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디 숨었는지 도무지 보이질 않네요." 김영갑 씨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아니오?"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자기 목숨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남도 구하게 되죠. 당장 나를 보더라도 얼마나 목숨이 소중한 것인지 알겠지요." "압니다. 그래서 가끔 배우러 들르는 거죠." "혼자 지내다 보면 나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지나는 길이 있으면 다시 꼭 들르세요." 그러리라고 말하고 영빈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이 머니까 살펴가세요. 그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군요." 삼십 분 만에 밖에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오는 길에 비가 멎고 하늘이 개었다. 영빈은 하늘의 별들을 보았다. 모래처럼 많은 별들을. 별들이 길바닥으로 쏟아져내려 차가 자주 기우뚱거렸다. 밤이 온통 검은빛으로 푸르렀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