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그녀와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으며, 나는 한순간 맨홀에 발을 헛디딘 것처럼 덜컥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애초에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나(왜냐하면, 사랑이란 미신에 사로잡히는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나는 뒤늦게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기 위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알다시피 떠나는 것이었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조차 못마땅할 지경이었다. 말해 무엇하랴만 글 쓰는 일은 폐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멀찌감치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떠나 있는 동안 저절로 관계가 소원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어느 모로 보나 내게는 분에 넘치는 사람이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내가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나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훗날 그녀도 한숨을 내쉬며 과연 그랬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그녀와 나는 평소에 자주 들르던 홍익대 근처에 있는 '소더비'(지금은 고깃집으로 변했다)라는 스탠드바에서 만났다. 그녀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이제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것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얀 샴고양이 같은 차가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테킬라 잔에 묻은 소금을 핥아 먹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꽤나 힘든 모양이네요? 나 때문에 그동안 글도 못 쓰고, 그렇죠? 가세요.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고요. 아시겠죠?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직후 전화가 걸려왔다(휴대폰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도사리고 있다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릴 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유럽의 겨울은 비가 자주 내렸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좀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나는 밤마다 술이나 마셔대고 있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곧장 하이네켄 공장을 찾아가 대낮부터 무료 시음 맥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쳇 베이커가 뛰어내려 자살한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뜬금없이 카프카의 「판결」을 떠올린다거나 어둑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콩알만 한 우박들이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며 시를 써보기도 하는 등 아무 연관성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또 베를린에서는 종일 동물원을 서성이다 유리로 된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고릴라와 눈이 마주쳐 제풀에 기함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나는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앓고 있었고, 그런데도 밤이 되면 카페의 흐린 거울 앞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러다 사람이 아주 못쓰게 돼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는 또 떠나기로 하고 부다페스트로 옮겨 갔다. 그것은 다시 재앙이 시작되려는 전조였다.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그 어느 유럽의 도시보다 극심한 우울증을 부추겼다. 비는 더욱 자주 내렸고 배수 시설이 좋지 않은지 도로에는 늘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런 데다 어디든 윤락녀들이 그 추운 날씨에 핫팬츠 차림으로 거리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단기 임대한 아파트에 누워 나는 병든 고릴라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 꼴이 된 걸까? 라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무병을 앓듯 내내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 놓여 있는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집주인인가 싶어 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 가까스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의 상태만 염탐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숨소리가 감지됐지만 상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인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마 북극이나 남극에 가 있다고 짐작하겠지.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산을 챙겨 들고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비가 아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유령들 사이를 헤집고 걸어갔다. 돌아보니 그새 한국을 떠나온 지 두 달이 돼가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동전이 떨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입국 허가를 요청했다. 나는 그렇게 자진하여 돌아갈 절차를 밟고 있었다. 만약 입국이 허용되는 경우 다시는 출국이 불가능하겠지. 동전이 다 떨어져 갈 즈음 그녀가 '오랜만에 광화문에 있는 삼전초밥으로 같이 저녁 먹으러 가고 싶으니까,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또 김춘수 선생의 「남천」이란 시가 난데없이 떠올랐던 것일까? 한겨울의 부다페스트에서 말이다.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지 않은가.
공중전화 부스, 저쪽 연못에서는 붕어가 알을 까고, 윤대녕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그녀와 나는 평소에 자주 들르던 홍익대 근처에 있는 '소더비'(지금은 고깃집으로 변했다)라는 스탠드바에서 만났다. 그녀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이제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것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얀 샴고양이 같은 차가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테킬라 잔에 묻은 소금을 핥아 먹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꽤나 힘든 모양이네요? 나 때문에 그동안 글도 못 쓰고, 그렇죠? 가세요.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고요. 아시겠죠?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직후 전화가 걸려왔다(휴대폰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도사리고 있다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릴 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유럽의 겨울은 비가 자주 내렸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좀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나는 밤마다 술이나 마셔대고 있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곧장 하이네켄 공장을 찾아가 대낮부터 무료 시음 맥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쳇 베이커가 뛰어내려 자살한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뜬금없이 카프카의 「판결」을 떠올린다거나 어둑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콩알만 한 우박들이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며 시를 써보기도 하는 등 아무 연관성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또 베를린에서는 종일 동물원을 서성이다 유리로 된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고릴라와 눈이 마주쳐 제풀에 기함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나는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앓고 있었고, 그런데도 밤이 되면 카페의 흐린 거울 앞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러다 사람이 아주 못쓰게 돼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는 또 떠나기로 하고 부다페스트로 옮겨 갔다. 그것은 다시 재앙이 시작되려는 전조였다.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그 어느 유럽의 도시보다 극심한 우울증을 부추겼다. 비는 더욱 자주 내렸고 배수 시설이 좋지 않은지 도로에는 늘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런 데다 어디든 윤락녀들이 그 추운 날씨에 핫팬츠 차림으로 거리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단기 임대한 아파트에 누워 나는 병든 고릴라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 꼴이 된 걸까? 라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무병을 앓듯 내내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 놓여 있는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집주인인가 싶어 나는 병든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 가까스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의 상태만 염탐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숨소리가 감지됐지만 상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인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마 북극이나 남극에 가 있다고 짐작하겠지.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산을 챙겨 들고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비가 아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유령들 사이를 헤집고 걸어갔다. 돌아보니 그새 한국을 떠나온 지 두 달이 돼가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동전이 떨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입국 허가를 요청했다. 나는 그렇게 자진하여 돌아갈 절차를 밟고 있었다. 만약 입국이 허용되는 경우 다시는 출국이 불가능하겠지. 동전이 다 떨어져 갈 즈음 그녀가 '오랜만에 광화문에 있는 삼전초밥으로 같이 저녁 먹으러 가고 싶으니까,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또 김춘수 선생의 「남천」이란 시가 난데없이 떠올랐던 것일까? 한겨울의 부다페스트에서 말이다.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지 않은가.
공중전화 부스, 저쪽 연못에서는 붕어가 알을 까고, 윤대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