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스스로 제외된 개인'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말에 걸린 자, 말에 질린 자, 말에 올라탄 자'라 답하겠다. 또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어둠이 되는 자, 빛에 긁힌 자'라 답하겠다. 이 황사 쳐들어오는 난감한 봄날,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무용지물, 무용지물, 무용지물, 천하의 무용지물'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순간을 감별하는 자, 순간을 범하는 자, 순간을 데우는 자'라 답하겠다. 또다시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언어가 생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봄비 추적거리는 거리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 재차 묻는다면 '고통하는 사람, 슬픔 받는 인간'이라 답하겠다. 비 내리는 가을밤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너, 당신, 그, 그대, 우리란 이름으로 남은 덧없고 더없는 나'라고 답하겠다. 눈 내리는 겨울 아침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움직이는 부재'라 답하겠다. 대체 시인이 뭐야 기습하듯 묻는다면 '너를 향하는, 나 아닌 나를 찾아가는, 타인을 항해하는 타인의 타인'이라 답하겠다. 그러고도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젖은 자, 젖은 자, 메마름에 젖은 자'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언어의 파괴승, 말의 타락천사'라 답하겠다. 한 번 더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한 줄을 쓰는 사람, 한 줄 이후를 쓰는 사람, 오직 한 줄을 쓰는 사람, 끝까지 한 줄을 쓰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아침에 물으면 아침에 다를 것이고, 저녁에 물으면 저녁에 다를 것이다. 백 번 물으면 백 번 다 다를 것이다.
시를 쓰며 산지, 시가 내 몸을 흐르기 시작한 지 삼십삼 년이 흘렀다. 시를 쓰지 않았으면 나는 무엇이었을 것이며 무엇에 열중하고 살았을까.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둘러댈 것도 마땅찮다. 이제야 말이지만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내 외로운 시선과 거친 호흡을 증명할 방법이 있겠나 싶다. 그 젊은 시절 왜 내가 글을 쓰려 했는지 지금도 아득하기만 하다. 연유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행위는 가열찼다. 나는 젊은 날 한때 시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수십 편의 시를 며칠 사이 한꺼번에 쏟아낸 적도 있다. 그땐 시가 내 몸을 통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광적인 시의 순간은 삶에 자주 오는 게 아니었으며, 그 후에도 몇 차례 말이 요동치고 언어가 분출하기도 했으나 그때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쓴다. 씌어지기 위해 쓴다. 시는 내가 쓰는 거지만, 좋은 시는 쓰는 것 이상으로 씌어진다. 다시 시의 벼락을 맞는 날이 올까. 그러기 전에 첫 한 줄, 첫 한 줄이 오기까지 막대한 침묵, 첫 한 줄 이후의 어둠, 어둠 이후의 다시 한 줄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백지 위에 초유의 한 줄을 쓰는 게 희망이며, 그 희망은 지금껏 내가 살고 알고 겪었던 것들 위에, 생로병사와 감정의 세계 안팎에 있는 것들일 게다. 하지만 그것은 미지의 지금 이 순간에 생성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쓰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 걸려 있는 과거와 미래를 쓰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태어난 게 그다음으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태어난 자의 고통스런 입과 심장을 통해서다.
내 삶은 오늘도 어김없이 줄어들었다. 그날 그밤 거기서 썼던 문장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날 그밤 거기서 종말을 맞았다. 그 밤의 눈빛과 그 밤에 씌어졌던 문장의 눈빛은 그 밤에 엄연히 속해 있었다. 그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도 그러하다. 나는 그 밤을 생각하지만 네 아픔을 데려올 수 없듯이 그밤 역시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한다. 그때 그 시간에만 가능했던 불가능한 문장의 감각과 찰나의 영원. 감각의 생사마다 빛 떨리듯 피는 꽃과 숨 멎듯 지는 잎들. 어둠 아래 어둠. 두 번이 아닌 삶과 사람과 그 고요하고 격정적이고 섬세하고 열렬하고 전투적인 사랑의 밤을. 언어의 사랑을. 말의 헌신을. 그 밤은 그 밤 속으로 가버렸고, 그 밤은 그 밤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떤 특별한 꿈이나 수식 없이 삶의 맨얼굴을 우연히 마주하는 한순간이 있듯. 삶 역시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오늘 저녁을 지나가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아주 가끔 나를 잊는다. 내가 나를 넋 놓고 있는 저녁에 노을이 장엄하게 서쪽을 물들인다. 저렇게 하루에 한 번씩 지는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일출과 함께 이 비루한 거리로 다시 돌아와 매일매일 삶을 끝장내듯이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로 돌아가고 싶다. 만남과 이별이 그렇고 창조와 파괴가 그렇듯이 이 세상에 정해진 건 없다. 정해진 생각과 행동을 부수는 정해지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 있고, 생사가 명멸할 뿐, 우주는 정해지지 않는다.
한 줄을 쓰는 사람, 박용하
시를 쓰며 산지, 시가 내 몸을 흐르기 시작한 지 삼십삼 년이 흘렀다. 시를 쓰지 않았으면 나는 무엇이었을 것이며 무엇에 열중하고 살았을까.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둘러댈 것도 마땅찮다. 이제야 말이지만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내 외로운 시선과 거친 호흡을 증명할 방법이 있겠나 싶다. 그 젊은 시절 왜 내가 글을 쓰려 했는지 지금도 아득하기만 하다. 연유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행위는 가열찼다. 나는 젊은 날 한때 시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수십 편의 시를 며칠 사이 한꺼번에 쏟아낸 적도 있다. 그땐 시가 내 몸을 통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광적인 시의 순간은 삶에 자주 오는 게 아니었으며, 그 후에도 몇 차례 말이 요동치고 언어가 분출하기도 했으나 그때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쓴다. 씌어지기 위해 쓴다. 시는 내가 쓰는 거지만, 좋은 시는 쓰는 것 이상으로 씌어진다. 다시 시의 벼락을 맞는 날이 올까. 그러기 전에 첫 한 줄, 첫 한 줄이 오기까지 막대한 침묵, 첫 한 줄 이후의 어둠, 어둠 이후의 다시 한 줄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백지 위에 초유의 한 줄을 쓰는 게 희망이며, 그 희망은 지금껏 내가 살고 알고 겪었던 것들 위에, 생로병사와 감정의 세계 안팎에 있는 것들일 게다. 하지만 그것은 미지의 지금 이 순간에 생성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쓰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 걸려 있는 과거와 미래를 쓰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태어난 게 그다음으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태어난 자의 고통스런 입과 심장을 통해서다.
내 삶은 오늘도 어김없이 줄어들었다. 그날 그밤 거기서 썼던 문장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날 그밤 거기서 종말을 맞았다. 그 밤의 눈빛과 그 밤에 씌어졌던 문장의 눈빛은 그 밤에 엄연히 속해 있었다. 그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도 그러하다. 나는 그 밤을 생각하지만 네 아픔을 데려올 수 없듯이 그밤 역시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한다. 그때 그 시간에만 가능했던 불가능한 문장의 감각과 찰나의 영원. 감각의 생사마다 빛 떨리듯 피는 꽃과 숨 멎듯 지는 잎들. 어둠 아래 어둠. 두 번이 아닌 삶과 사람과 그 고요하고 격정적이고 섬세하고 열렬하고 전투적인 사랑의 밤을. 언어의 사랑을. 말의 헌신을. 그 밤은 그 밤 속으로 가버렸고, 그 밤은 그 밤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떤 특별한 꿈이나 수식 없이 삶의 맨얼굴을 우연히 마주하는 한순간이 있듯. 삶 역시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오늘 저녁을 지나가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아주 가끔 나를 잊는다. 내가 나를 넋 놓고 있는 저녁에 노을이 장엄하게 서쪽을 물들인다. 저렇게 하루에 한 번씩 지는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일출과 함께 이 비루한 거리로 다시 돌아와 매일매일 삶을 끝장내듯이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로 돌아가고 싶다. 만남과 이별이 그렇고 창조와 파괴가 그렇듯이 이 세상에 정해진 건 없다. 정해진 생각과 행동을 부수는 정해지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 있고, 생사가 명멸할 뿐, 우주는 정해지지 않는다.
한 줄을 쓰는 사람, 박용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