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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멈춰 섰어. 우리가 결혼하기로 한 교회가 눈앞에 서 있어.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교회는 말 그대로 폐허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었어. 수백 년의 세월이 다 무어냐는 듯이. 태풍이며 비며 눈이며, 전쟁이며 그런 것이 다 뭐냐고 코웃음 치듯이. 마치 혼자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탄 것처럼. 남루하고 늙었고, 지붕 한쪽은 내려앉아 있었지만 굳건했어.

나는 계단을 올라가 까맣게 때가 탄 문설주를 쓰다듬었어. 혹시 내가 아직도 환상을 보고 있나 싶어서. 그때 시골집 문설주를 쓰다듬던 당신이 생각났어.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어. 사람이 드나드는 집은 오래 간다고. 누군가 문을 열고 닫고 환기를 시켜주고, 이불을 펴고 누워 자고 깨고,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먼지를 쓸고 물기를 닦아 주는 집은. 그제야 당신 편지가 떠올랐어. 그렇게 수십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왜 지금까지 떠오르지 않았을까? 당신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데.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문설주에서 뭔가 후두둑 떨어졌어. 낡아서 천 끈이 끊어진 것 같았어. 떨어진 것들을 주웠어. 삭고 곰팡이가 나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어. 내가 친구들에게 준 목걸이였어. 떨리는 손으로 안에 들어 있는 사진을 꺼냈어. 사진 뒤에는 예식 당일에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같이 들어 있었어. 그 후로도 계속 왔나 봐. 뒤에는 애인이나 자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라.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사진도 있었어.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있더라. 거기에 "먼저 간다, 인마."라고 쓰여 있었어.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당신이 내 귀에 속삭였어.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삭은 카펫이 맨발에 밟히며 삐그덕 소리를 냈어. 발을 옮길 때마다 하얀 먼지가 향처럼 일어났어. 의자는 녹슬고 낡았지만 정돈되어 있었어. 제단 뒤 벽에 색 바랜 종이가 겹겹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 원래는 색지였을 것 같았지만 모두 회색이었어. 거기에 물먹은 글씨로 비슷한 말이 잔뜩 적혀 있었어.

나는 한 번 넘어졌어. 일어나 다가갔어. 종이는 만지는 대로 부서져 나갔어. 종이마다 붙여진 시기가 달랐어. 수백 년 전 것도 있고 수십 년 전 것도 있었어. 몇 년 단위로 왔을 때도 있었던 것 같았어. 벽을 따라 걷다가 커튼을 잡았는데 죽 흘러내리더라. 그 뒤에 종이며 리본이 누군가 칼로 마구 생채기를 낸 것처럼 찢겨져 나가 있었어. 그 위에 스프레이로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 그이는 없어. 백만 년쯤 전에 죽었을 거야."라고 쓰여 있었어.

나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어. 말이 심장을 베어서 피가 통하지 않았어. 주저앉았고 그대로 오래 앉아 있었어. 다행이라고 중얼거렸어. 속은 다른 말을 했겠지.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말했어. 그만둬서 다행이라고. 한참을 그러고 있다 일어나려는데 널브러진 커튼에 붙어 있는 종이가 눈에 띄었어. 노란색이라서 눈에 띄었어. 노란색이었어. 색이 남아 있다는 건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색이 바래지 않았다는 거야. 어릴 때 창가에 놓아둔 책들을 떠올렸어. 몇 년 가지 않고 표지가 하얗게 바랬었는데. 종이를 커튼에서 떼어냈어. 잘 안 떨어지더라. 접착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었어. 작년이었을까? 한 달 전? 어제? 방금?

해가 기울며 창에 걸쳐 졌어. 창에 걸쳐진 해가 은빛 커튼을 드리우며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모습을 드러냈어. 비질을 한 바닥. 새로 종이를 얹은 제단, 제단에 놓인 꽃병,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며 그 위에 얌전히 놓인 양은냄비까지. 사람이 밟고 오간 발자국이며 이부자리 흔적까지. 바람이 불어와 삭고 낡은 종이가 우수수 떨어졌어. 햇빛이 내려앉아 글씨를 황금빛으로 비추었어.

기다리고 있어. 내가 여기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