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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엄청 추웠다. 써야 할 것을 하나도 쓰지 못해서 또 엄청 불안했는데 억지로 뭔가를 쓰고 돌아가는 길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뭐에 그리 화가 나서는 뭐, 뭐, 나보고 어쩌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새벽에 골목을 걷다가 들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그랬다.

지하철이나 공원 같은 데에서 그런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한번은 뭐라고요?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되물었다가 금세 민망해졌는데 그런 거 하지 마요, 사람 많은 데서 왜 자꾸 혼잣말해요, 헷갈리게 그러지 말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뭐라는 거예요? 그 겨울 내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주 중얼거렸다.

화가 났으므로 화가 난 이유를 찾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당하고 부정하고 불합리한 것들, 객관적으로 나빠서 함께 비난할 수 있을 만한 것들, 내가 아니라 다른 쪽에서 찾자. 무엇이든 나만 아니면 된다고. 나를 화나게 한 책임이 거기에 있다고. 그런데 그게 다 뭐였나. 그해 겨울 나를 화나게 만든 그 무엇. 뭐였길래 이토록 사람을 옳게 만드나. 내 말은 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그래서 맞는 소리라고 주장하게 만드나. 반면에 반박하는 말들은 왜 모조리 틀리게만 들렸나. 그러니까 그건 진짜 뭐였을까.

나를 무섭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틀렸다고 확신한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세계가 끝나고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도를 아십니까?" 묻는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저들이 말하는 게 진짜 맞는 게 아닐까 싶어서 불안해진다.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내가 다 따라가지 못한 게 아닌가.

또 내가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목격담 하나가 있는데,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의 종아리를 걷어차는 노인을 보면서 저건 또 어디서 온 권한인가, 공중도덕이라는 신념이 사람을 어떻게 저리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나, 무서웠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나도 그랬던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내가 저렇게 무서워 보인 적은 없었나.

언젠가 또 어디서 내가 한 말 중에는 귀신은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게 있다. 그런 걸 보게 된다면 엄청난 행운이지 않나. 더이상 불확실하지 않으니까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믿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귀신에게 빌면 된다. 그런 세계라면 나는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불안하다고.

만약 이 세계가 그토록 분명하고 확정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래서 무엇도 의심할 필요 없이 믿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소설은 세간의 떠도는 말처럼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암담하므로,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아직 산재해 있는 세상이므로, 나를 계속해서 쓰게 해주지 않겠나. 그러므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틀렸더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투고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점.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이용할 거라는 점.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성찰과 참회인 척 교묘하게 속일 수도 있다는 점. 나아가 논리와 합리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할 거라는 점. 무엇보다 기대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

더불어, 선명하게 나쁜 것을 색출해내는 일만큼 복잡하게 나쁜 것을 감각해야 할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게 슬픈 사람들 사이에 민감하게 아픈 사람들도 있다는 점. 모호하게 다친 사람에게는 다른 종류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 아니라면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필요로 할 때가 있었고 애매하게 그게 도움이 되었고 모호하게 괜찮아졌던 것인지도.

「고두」를 쓰는 동안에는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해 있었다. 퇴실을 하루 앞두고 전해 들은 말로는 내가 묵었던 방이 소문의 그 방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때 내가 '그것'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의심하지 않았을 뿐. 그러므로 하나도 두렵지 않아서 몰랐던 게 아닐까. 무언가 뒤에 있는 것 같고 돌아보면 없었는데 실은 정말 그런 종류의 것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린 게 아닌가.

두고두고 애매한 것들과, 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