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다. 뼈와 피를 나누었고, 오랜 세월을 부대끼며 자라왔다. 그런 녀석과 나 사이에도 거리는 있다. 서로가 아무리 끌어당겨도 쉽게 내보일 수 없는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바로 그 영역 안에서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 더 애가 탄다. 나는 이 거리를 되도록 지켜주고 싶지만, 드물게는 깨야 하는 때가 오고야 만다. 긴 시간 공을 들이고 마음을 열고 속내를 꺼내기까지 진땀을 빼지만, 역시나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것들은 내가 손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허망함이 먼저 든다. 난감했다가 안타깝다가, 결국 알아두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다고 이런 ‘좁히기’ 가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어렵더라도, 한 번 길을 터놓으면, 다음번엔 놈이 먼저 말을 꺼내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형이 이런 나를 알고 있다, 그런 후에는, 더 넋 놓고 앉았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힘을 좀 내봐야겠고, 일어서야겠고, 걸어봐야겠다, 답은 그런 시작으로 찾게 되는 거라고 믿고 싶다. 그가 내게 그랬듯, 배운 바대로. 작년 초 형이 나를 한 번 잡았다. 되게 혼났다. 정신 차릴 수 없다면,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만 가려 하라 당부했다. 나는 분명 잘못 돼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별말이 없었다. 몇 번 나를 끌고 여행을 갔고, 그때마다 노동에 가깝게 걸리고 또 걸렸다. 답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일 년 반이 걸렸다. 어떤 시절을 통으로 들어낼 수 있다면, 장고 없다. 해서, 지난 이야기는 할 것도 없다. 그저 나를 웃게 했던 말린 고사리와 지리산 운무에 대해서,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 이제 편하게 한잔 마시면 되겠다. 새끼, 다 돌아왔네. 그 말이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