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봄날, 들끓었던 뜨거움이 사랑이었건 혹은 정점을 찍었던 분노건, 그것을 선택해 가졌건, 불가피했건, 과거 어떤 시절보다 더했건 덜했건 지나갔고 지나왔다. 다시 없을 대부분은 그렇게 떠났고, 남은 날의 대개는 고요하고 때로는 지루하며 가끔은 기분 좋은 흥분감을 주기도 하겠지만, 전과는 다르고 전만큼은 아닐 것이어서, 나를 휘감지도 휘두를 수도 없을 것을 안다. 감정이란 어떤 것도 영구히 내 것일 수는 없어서, 믿고 싶고, 속고 싶은 그것이 전부인 양 계산 없이 현재를 소모할 만큼 순진하지도 선량하지도 여유롭지도 못하다. 이쯤 되고 보니 새삼 어리석었다.
물론 너와 함께 했던 긴 시간을 믿지, 걸어왔던 먼 길을 믿지, 그러나 그보다 지금을, 또 그보다는 나로서의 나를 더 확고히 믿는다. 장담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짓고 영원을 약속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개수작 같아서, 그저 내가 옳다고 판단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뜻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런 내가 당신에게 마땅히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 기쁘게 밥을 넘기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꿀 같은 잠을 자겠다. 당신이 내게 갖는 너른 이해심이나, 살뜰한 마음을 빼고서 나를 보더라도 말이다. 매사에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못한 성정에 대한 변명으로 들어도 좋고, 큰 변화 없을 나에 대해 미리 쳐두는 방패로 오해해도 관계없다. 하지만 틀림없이 알아줬으면 싶은 것이 있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했던 빙점의 내가, 이 관계를 지키려 가장 기를 썼던 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맺게 하고 깊어지게 하는 것은 감정이지만 결국 그것을 지키게 하는 힘은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아이러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출발했지만, 제정신이 들고 보니 이 딴 부조리한 감정의 덩어리가 관계를 망쳐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함부로 절망하지 않는다. 이 사랑도 곧 막을 내릴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기보다, 이제 방향을 조금 틀고, 춥지 않을 정도로 온도를 낮추는 대신 더욱 굳게 결속하고, 있는 그대로의 조화로운 우리를 위해, 나는 외려 더 제정신이어야겠다. 관계의 실패를 거듭했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내가 무너졌다는 데에 있었음을 아프게 인정한다. 살아 있는 한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테지만, 그러한 노력은 이 관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관계를 배제하고서라도 그대로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사람만이 갖는,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는 힘에 대해서 생각한다, 종국에는, 그런 자만이 관계를, 사람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희망을 본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이 글을 옮기기 위한 전초전을 치렀다. 반석지안(盤石之安)이라는 넉 자를 시작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다 못해 이탈했는지도 모르겠다며 함께 웃기도 했다. 거리감을 극복해온 고맙고 영리한 코드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렇게 말을 해두면 앞으로는 그것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내 예견도 딱 들어맞을 것이니, 두고 보라는 호언도 했다. 경계하며, 여자의 다짐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당신의 돌발행동에는 언제나 대비하고 있겠다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렵고 어지럽던 지난 시간과, 휑한 기분으로 방황이 많았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가 왜 그토록 멀리 달려야 했는지를 알 것도 같다는 내 자백에, 툭툭, 당신은 눈물을 쏟았다. 울며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미쳐있지 않다. 당신이 없으면 당장에 죽을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이런 주제에 내가, 감히 당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당신을 향해 서 있다, 바라본다. 너를 안은 내 두 팔이 전과같이 뜨겁지는 않겠지만, 전보다 더 굳건하고 견고해, 안심해도 좋을 만한 것이기를, 내게 기대하고 네게 당부하며.
물론 너와 함께 했던 긴 시간을 믿지, 걸어왔던 먼 길을 믿지, 그러나 그보다 지금을, 또 그보다는 나로서의 나를 더 확고히 믿는다. 장담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짓고 영원을 약속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개수작 같아서, 그저 내가 옳다고 판단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뜻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런 내가 당신에게 마땅히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 기쁘게 밥을 넘기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꿀 같은 잠을 자겠다. 당신이 내게 갖는 너른 이해심이나, 살뜰한 마음을 빼고서 나를 보더라도 말이다. 매사에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못한 성정에 대한 변명으로 들어도 좋고, 큰 변화 없을 나에 대해 미리 쳐두는 방패로 오해해도 관계없다. 하지만 틀림없이 알아줬으면 싶은 것이 있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했던 빙점의 내가, 이 관계를 지키려 가장 기를 썼던 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관계를 맺게 하고 깊어지게 하는 것은 감정이지만 결국 그것을 지키게 하는 힘은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아이러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출발했지만, 제정신이 들고 보니 이 딴 부조리한 감정의 덩어리가 관계를 망쳐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함부로 절망하지 않는다. 이 사랑도 곧 막을 내릴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기보다, 이제 방향을 조금 틀고, 춥지 않을 정도로 온도를 낮추는 대신 더욱 굳게 결속하고, 있는 그대로의 조화로운 우리를 위해, 나는 외려 더 제정신이어야겠다. 관계의 실패를 거듭했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내가 무너졌다는 데에 있었음을 아프게 인정한다. 살아 있는 한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테지만, 그러한 노력은 이 관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관계를 배제하고서라도 그대로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사람만이 갖는,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는 힘에 대해서 생각한다, 종국에는, 그런 자만이 관계를, 사람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희망을 본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이 글을 옮기기 위한 전초전을 치렀다. 반석지안(盤石之安)이라는 넉 자를 시작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다 못해 이탈했는지도 모르겠다며 함께 웃기도 했다. 거리감을 극복해온 고맙고 영리한 코드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렇게 말을 해두면 앞으로는 그것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내 예견도 딱 들어맞을 것이니, 두고 보라는 호언도 했다. 경계하며, 여자의 다짐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당신의 돌발행동에는 언제나 대비하고 있겠다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렵고 어지럽던 지난 시간과, 휑한 기분으로 방황이 많았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가 왜 그토록 멀리 달려야 했는지를 알 것도 같다는 내 자백에, 툭툭, 당신은 눈물을 쏟았다. 울며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미쳐있지 않다. 당신이 없으면 당장에 죽을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이런 주제에 내가, 감히 당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당신을 향해 서 있다, 바라본다. 너를 안은 내 두 팔이 전과같이 뜨겁지는 않겠지만, 전보다 더 굳건하고 견고해, 안심해도 좋을 만한 것이기를, 내게 기대하고 네게 당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