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라는 메시지. 덮어놓고 낳았으니까 내 새끼. 라는 건 완전 우리 입장이고. 아이들에게는 누가 나를 낳았는지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버지라 부르고 나와 함께 시간을 쓰는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거다. 영화에서의 플롯이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나처럼 혈에 집착하는 사람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낳은 정 기른 정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장치를 떠나서, 내가 만들었고 이 새끼가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으로, 과연 당신 스스로 아버지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아이란 그저 못다 이룬 내 꿈의 제2막은 아닌가. 뭐, 그런 이야기. 그런데 말이다. 케이타도 류세이도 안타깝지만 가장 짠한 건 료타다. 어떤 아버진들 료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감독의 반성문 같은 영화라고 하는데, 반성문 쓰시고 계속 일하셔야지. 현실이 어디 그리 쉽나. 그래서 가장 좋았고 집중됐던 부분이, 바로 료타와 케이타의 화해장면인데, 료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단 한 사람도 역시 키운 아들 케이타라는 것. 똘꼬마가 삐쳐서 달아난 건, 나와 놀아주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써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간이 많건 적건, 그 시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닌데, 아버지가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무시해서다, 그 시간의 나를 포기해서다. 이 부분에서 아주 그냥 모니터를 뚫고 들어가 꼭 안아주고 싶던. 보세요.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