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날들을 꿈꾸며 다시 어리석지 않겠다. 그러한 다짐이 필요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는 차라리 더웠다. 허연의 시처럼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들이 잘 어울리는 나이, 그래서일까, 이제는 그조차 필요 없게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남은 어떤 마음이 나를 기망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좋고, 기계적으로 괜찮은 인간으로 살면 그뿐이다. 그런데 무얼 해도 나는 전같이 뜨겁지를 못해서 그때마다 드는 어떤 상실감이, 부담스럽다 못해 아프다. 물리적으로 아프다. 대충 여기 어디쯤이, 종종.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뒤로 오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기분으로 지냈다. 어떤 장소와 시간을 빌려 푸른 날을 흉내 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마치 거기에 소중한 무엇을 두고 온 사람처럼 여기에 성실할 수 없었다. 무엇도 차분하게 돌볼 수 없었다. 소란한 속을 숨기고 무기력한 겉으로 벌써 한 달여를 보냈다. 이런 기분을 설명할 수 없어 한참 어지러웠다. 그러다 며칠 전, 줄줄 말이 되자, 급기야 상실감에 몸서리를 치느니, 차라리 내가 버리지, 절제(切除)해 절제(節制)되고 마는 안전한 삶을 택하지, 하지만 모르겠다. 내가 자른다고 잘리는 게 맞는지, 어느 날 내민 새하얗고 예쁜 손에 대고 당신이 내가 찾던 뮤즈다. 개소리하지 않을 수 있을지, 시끄럽고, 잘 가요, 할 수 있을지. 아니 그 보다 그 하얀 손을 빙자해 나를 속이고, 신념을 놓치고, 나란 인간의 유구한 역사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러니까 텅 빈 채 마음인 척 가짜를 만들어 진짜를 훔치고 사랑이라 이름 지으며 당신이 아닌, 우리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게 될 것 같은 두려움. 그래, 나는 그게 정말 겁이 난다. 그러나 그래서 다행이다. 겁이 나서 안심이다. 겁나니까 까불지 않을 테다. 절제해 절제되겠다. 추하게 열정을 탐하느니, 깨끗이 차갑게 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