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의도 없어지고, 손이 많이 가 귀찮기도 해서 하지 않는 필름 사진. DSLR의 쨍하고 맑은 결과물에 적응되기도 했지만, 가끔은 그 특유의 색감이나 공간감이 그리워서, 떡보정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데. 그랬는데. A7은 디지털인가 싶게 아주 필름스럽다. 내가 딱히 해줄 게 없다. 그냥 찍으면 돼. 초기 모델은 마뜩잖아 잊고 지내다가 MARK II를 산 건 정말이지 신의 한 수. 무엇보다 몇십 년 된 수동렌즈와 호환하기 위해 태어난 바디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다양하게 써볼 생각인데, 보나 마나 아련하게 좋은 느낌일 거고. 수동카메라나 렌즈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서, 일본에 갈 때마다 중고 카메라 가게엔 꼭 들르곤 했는데, 갖고 싶은 놈이 생겨도 쓸 일이 만무해 두고 왔다. 다음번엔 양손 무거워지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유자식 개고생을 뼈저리게 느끼며. 애새끼랑 놀아주느라 시간을 다 씀. 아이가 생기면,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댈 것으로 생각했지만. 애새끼는 가만히 있는 피사체가 아닐뿐더러, 나를 가만히 두는 피조물도 아니었던 것이다. 졸지에 애새끼 체험프로젝트. 아니, 테디베어야 여자들이 보채면 그렇다 쳐도, 내가 머리털 나고 공룡랜드 따위에 갈 줄 알았겠냐. 그 비를 뚫고, 티라노사우루스를 함께 외치며. 그것도 모자라 면세점에서는 공룡 세트를 끌어안고 사랑에 빠지심. 그런 게 집에 백 개나 있다는데 소용없음. 말 안들음. 저런 미친 거를 정말 낳아야 합니까? 미친놈 치료한다 생각하고 참고 키우라고. 모쪼록 너도, 너도, 또 너도 한때는 하나같이 미친놈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승전엄마 계좌로 입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