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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지막 발치가 되리라. 때마다 부담되는 마취로 전날 잠 설치고 병원엘 갔는데. 혈액검사에서 마취 불가 판정을 받는다. 결과는 신부전. 간 수치도 높고. 나는 내 병신같은 나약함에 대해 생각한다. 오직 사료와 물, 원칙을 알고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뭐라도 조금 더 해주고 싶었던 약해빠진 마음. 영양제 네 종류가 무리가 됐던가. 씹는 재미 보라고 말려 주었던 닭가슴살이 문제가 됐던가. 노령견에겐 모두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씨발 그냥 내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다. 신경 써 잘하려고 했던 일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허탈하고 무기력해지는 지점이다. '선생님, 영양제와 닭가슴살 주기 시작한 건 반년이 넘습니다. 미쳐버리겠네요.' '늦지 않게 캐치한 것으로 다행이니까 벌써 낙담하지 말아요.' 열흘 먹일 간 수치 관련 약 처방과 유산균 처방, 신장은 처방 사료로 바꾸고 간식과 영양제를 끊는 것으로 수치 변화부터 체크하기로 했다. 치약마저 끊고 물 양치를 조금 길게 한다. 뽀뽀를 좋아하는 새끼가 염려돼 얼굴엔 스킨도 바르지 않는다. 건조해 미쳐. 당분간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게 좋으니 산책도 놀이도 모두 금지. 산책은 제 발로 걸어야 제맛인 새끼라 안고 걸으면 발버둥을 치고 동네 떠나가라 울어버려 이건 정말 미칠 일. 무료하고 심심한 날들. 어떡하나. 보름 후 재검에서 드라마틱한 수치 변화가 와준다면 최근 한 달 정도 과한 단백질 급이가 문제 된 것일 테고 그게 아니라면 누적된 결과일 것이다. 이별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런 쪽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할 생각이 없다.

최선을 찾고 실행하는 날들, 음수량도 충분하고 식욕도 살아 있어 맛이 더럽게 없다는 처방식도 잘 먹어준다.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고 소변 색과 양을 체크한다. 편의점 갈 때도 분리수거 할 때도 녀석을 안고 간다. 잠시도 혼자 두지 않는다. '날 좀 따뜻해졌으면. 미세 먼지 좀 걷혔으면. 바람 좀 그만 불었으면. 그렇지?' 주말 밤 잠든 녀석을 쓰다듬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주체할 수 없어 흐느끼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에 잠 깬 녀석이 '돌았나?' 싶은 눈으로 나를 한번 보더니 귀찮다는 듯 자리를 옮겨 누웠다. 현타 와서 웃음 터지고. 그래 그런 것이지. 너와 내가 이별 근처에 와있다면 애틋하고 슬픈 장면이 연출됐겠지. 민망하네? 오래 지금처럼 '야 울어? 개보다 못한 놈.' 해주면 좋겠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위로하지 마라. 배려하지 마라. 도도하고 싹수없는 성골 말티 답게 성격 잃지 마라.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된 것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믿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테니까. 나는 너로 매일이 설레.

매달려 사는 날들,
"이게 연애라면 아주 존나게 불공평한 것이다.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어. 눈치 보고, 비위 맞추고, 어르고 달래고 빌고 부탁해. '시무룩하면 안 된다니까? 마음이 즐거워야 하거든.' 개콩나발 같은 잡설을 늘어놓다가 냉장고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면 납작 엎드려서 또 달래. 가자. 조금만 참자. 먹으면 아프다니까. 그러면 삐쳐서 등 돌린다. 불러도 들은 척 안 해. 야이 씨 내가 첫사랑에게도 이러지는 않았어. 너는 뭔데 나를 자꾸 꿇려. 마음이 막 그렇다가, 어휴 아니다, 내가 잘못했어. 다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 이 지랄 하면서 또 꿇어."

"이야 아름이가 그걸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