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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선물을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대가를 바라서이고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되지. 알아듣겠니? 지금 당장의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의 이익을 담보하게 된단다. 손해 아니라 투자. 선물 아니라 거래.

"그래, 바쁜데 미안하구나."

그게 뭐였겠니? 과연 내가 미안해한 것은 무엇일까. 무얼 사과한 걸까.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아라. 그것은 단순히 하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나는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의도가 있었을 뿐이지. 나는 너와 달리 무례한 인간이 아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도리를 지킨다는 인상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려는 목적에서였다. 그게 더 근사한 일이라고. 내가 더 멋있다.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뿐이거든. 나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식적이라고?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걸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니? 진짜는 머리를 조아리는 각도,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오는 것들 아니겠니? 너를 때리긴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같은 건 없단다. 호소력 같은 것이 다 무엇이겠니. 그것은 형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잘못을 했다면 더 오래 무릎을 꿇고 더 낮게 엎드리는 자세, 그게 가장 필요하다. 일종의 의무이며 책임지는 자의 태도 같은 것이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사랑해서 아내를 때리고, 우리 가정을 파탄냈습니다, 같은 건 없어.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나도 맞고 자랐어요, 폭력 가정에서 나고 자라 그랬습니다, 하는 변명과 뭐가 다르겠니? 둘 중 어느 말이 더 진짜일까. 대답해보렴.

나를 비난하고 싶겠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고 욕하며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의로운 척 떠들어대고 싶은 거 아니냐?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는 몰라.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 거지. 정치인을 혐오하고 가정폭력범과 강간범을 혐오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터넷에 올리고 퍼뜨리고 그걸로 무언가 바로잡는 줄 알아. 그러면서도 정작 그게 자기 모습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거든.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거나 고학력자라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겠니. 키보드 앞에 앉아서 뭐에 그리 화가 나 있는 거냐고. 그게 다 도덕이고 정의이고 올바른 세계라고 믿는 거거든.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다고. 더구나 적극적인 혐오를 통해 자기는 그런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하거든. 진짜를 말하자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는 거야.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그런 세계에 사는 자들의 전형이 있고 그것은 자기와 다르며 그러므로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여전히 어려워하는구나. 너라면 다를 줄 아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다른 게 아니란다. 다만 그런 상황이 너에게 없었을 뿐. 아니라고? 너는 계속 아니야? 그런데 지금 여기가 어디냐? 뭐가 그리 깨끗해서 너는 여기에 있는 것이냐? 실수라고 했니? 그 일은 사고였다고? 봐라, 말하는 것이 꼭 나를 닮았구나.

고두, 임현